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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3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정종(재위 1398~1400) 왕관을 쓰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아니면 왕이 되려 하지 말고, 어쩌다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정종은 천성은 착했으나 권력의지와 냉혹한 정치 현실을 간파할 지략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1. 운명에 몸을 맡기다.     정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방과이다. 1398년 8월, 마흔둘의 나이로 왕세자가 되고 같은 해 9월에 왕위에 올랐다. 정종은 치세 2년 만에 자진해서 물러났다. 그 배경에 태조 이성계의 아들 8명이 벌인 권력 투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의왕후 한씨는 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6남과 경신, 경선 2녀를 두고 있었고, 조선 개국 1년 전에 사망하게 된다.     신덕왕후 강씨는 방번, 방석 .. 2025. 2. 26.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 태조 이성계는 변혁의 리더였으며 이에 맞는 창조적 혁신 전략을 구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1. 변방에서 중앙으로     이성계는 변방의 장수였다. 1258년에 동북면을 강탈한 원나라는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였고, 이곳에서 이자춘은 촌장을 지내며 차남 이성계를 낳았다.     홍건적의 두목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원나라를 압박하던 시기에 이자춘은 고려의 공민왕을 찾아가 고려의 옛 땅을 수복하겠다고 하였고, 99년 된 쌍성총관부를 몰아냈으며 당시, 이성계도 이자춘을 도와 공을 세웠고 그때부터 이성계는 친명파가 되었다.    1361년 홍건적 10만 대군이 개경까지 내려와 공민왕이 충주로 피란 갔을 때에도 이성계가 사병을 동원하여 개경을 탈환하는 공을 세웠다. 1362년 원나라 나하추가 수만 병사를 이끌고 고려를 .. 2025. 2. 26.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조선 왕들의 8가지 리더십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는 거울입니다. 그 중 조선왕조실록을 통하여 조선왕조 500년, 왕 27인의 리더쉽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위민의 리더 👉 나라의 근간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핵심 소양으로 한다. 즉, 왕과 백성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것이 위민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사회는 인의예지신으로 소통하고, 통치는 덕으로 하여야 하며, 그 안목을 부여하는 것이 유교적 소양이다. 이로써 조선은 군대와 치안조직을 최소화하고, 오직 관권과 향권만으로 500년을 다스릴 수 있었다.  세종과 정조가 이에 해당한다.   2. 결과 중심의 리더  👉 이들에게 “절차의 정당성”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누가 제거 대상인지 정확히 알고 과감한 선제공격을 하며, 상황에 따라 대의명분이 달라진다. 초자아(su..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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