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쓰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아니면 왕이 되려 하지 말고, 어쩌다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정종은 천성은 착했으나 권력의지와 냉혹한 정치 현실을 간파할 지략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1. 운명에 몸을 맡기다.
정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방과이다. 1398년 8월, 마흔둘의 나이로 왕세자가 되고 같은 해 9월에 왕위에 올랐다. 정종은 치세 2년 만에 자진해서 물러났다. 그 배경에 태조 이성계의 아들 8명이 벌인 권력 투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의왕후 한씨는 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6남과 경신, 경선 2녀를 두고 있었고, 조선 개국 1년 전에 사망하게 된다.
신덕왕후 강씨는 방번, 방석 2남을 두었다. 강씨는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자구책으로 정도전을 가까이하였다. 정도전 역시 한씨 소생의 왕자들보다 강씨의 막내아들 방석이 신권정치를 구축하기에 적합하다고 보고, 태조와 함께 방석을 세자로 세우기로 한다. 이때 방원은 태조에게 장남 방우를 세자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배극렴과 조준은 개국공신인 방원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태조는 방석을 세자로 내세웠고, 1396년 신덕왕후 강씨가 숨을 거뒀다.
이에 방원은 한씨 소생 형제들과 함께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일파는 물론 세자 방석과 방번까지 살해하였다. 정도전의 죽음은 이성계의 날개가 꺾였음을 의미하였다. 이후 하륜 등이 나서서 방원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방원이 사양했다. 아버지 태조를 내쫓고 왕이 되었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방원을 둘째 방과를 세자로 내세웠다. 장남 방우가 병사했기 때문에 방과의 왕위 계승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태조는 왕자들의 권력욕에 환멸을 느껴 하야했는데, 이는 자의가 아닌 타의가 더 강했던 것이다. 태조는 이지란 등 측근 수백 명을 대동하고 국세까지 가지고 고향 함흥으로 떠나게 되었다.
2. 정종의 업적; 분경금지법
방원에 의해 왕위에 오른 정종은 15남 8녀 중 맏아들 불노를 세자가 될 아이라며 원자라 칭하였다. 이에 방원이 불같이 화를 냈고, 측근 이숙번, 하륜, 남재 등이 대궐에서 공개적으로 "원자가 나라의 화근"이라고 떠들었다. 그제야 정종은 부들부들 떨며, 불노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궁 밖으로 쫓아냈다.
허수아비 왕 노릇에 만족하기로 결심한 정종은 1399년 8월 역사에 남을 법안을 하나 내놓았다. 분경금지법으로 일종의 청탁금지법이었다.
분경은 권력자 집에 이익을 챙기러 분주하게 드나든다는 분추경리의 준말이다. 이런 행위를 벼슬을 돈으로 사냥한다 하여 엽관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조선을 개창한 세력들은 고려 멸망의 큰 원인 중 하나가 분경이라 보았다. 정종 때 만든 이 법안은 이방원이 즉위한 후에도 그대로 시행하였다.
방원은 정종을 앞세워 놓고 왕위 접수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정종도 보신책의 일환으로 정무는 방원에게 일임하고 격구 등 오락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때문에 정종과 방원의 우애는 유지되었다.
1400년 1월 방간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평소 야심이 있었던 방간은 방원에게 밀렸고, 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박포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방간을 찾아와 방원이 방간을 죽이려 한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방간의 사병과 방원의 사병이 개경 시내에서 충돌하였고 그 결과 방원이 승리하였다. 이후 방원은 왕족과 귀족의 사병을 해제하고, 모든 군권을 의흥삼군부로 집중했다. 이로써 방원이 군권을 장악한 것이다.
방원이 군권을 독점하자 정종은 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절차를 밟았고, 곧바로 왕위에서 물러나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아들 15명 모두를 출가시켰다. 상왕이 된 정종은 인덕궁에 머물며 사냥, 격구, 온천 등으로 20여 년을 즐기다가 세종 원년에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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