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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5

조선왕조실록 500년: 정조(재위 1776~1800) "절망으로 단련되었고 희망으로 움직였다"    미완의 혁신 군주 정조의 일생을 압축한 말이다. 경영인이나 정치인이 서로 본받겠다고 하는 인문이 세종이라면, 종조는 인문학자들의 찬사를 받는 왕이다.    정조는 16세기 말 선조 이후 200년 이상 깊어진 붕당정치의 한복판에서 등극했다. 정조와 세종이 둘 다 영민하고 진보적이며 결단력이 강했으면서도, 세종이 소통을 중시한 리더였다면 정조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일을 풀어갔다.   정조는 주자를 신봉하면서도 실학을 수용하고자 했고, 금난전권의 특혜를 폐지하는 등 상업을 활성화했다.     만약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그래서 화성 신도성이 완성되고, 군민 공치체제가 정책했다면 조선은 청나라는 물론 동아시아를 넘어서는 나라로 웅비했을 것이다. 1. 과인은 .. 2025. 3. 1.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영조(재위 1724~1776) 조선의 르네상스를 영조는 재위 내내 경종 독살설과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두 가지 소문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것은 전략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영조의 통치는 '혁명은 의지로 하지만 개혁은 정치로 한다'는 경구를 실감케 한다.     영조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전략적 리더의 통치는 무엇일까?    첫째, 자기 절제가 강했다. 철학자 칸트처럼 일상이 규칙적이었으며, 고기와 술을 멀리 했고, 소식했다.    둘째, 전략적 판단을 내릴 때 관련 자료를 살폈다. 영조는 재위 52년 동안 경연을 무려 3,459회 열었다. 다양한 학자와 엄             청난 양의 학식 있는 토론을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 , 등 후세 왕들이 참고할 교             훈서를 남겼다... 2025. 3. 1.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경종(재위 1720~1724) 경종은 몸과 마음이 다 약했다. 강한 숙종은 당쟁을 이용했으나 약한 경종은 재위 4년 내내 당쟁에 이용당했다.    중종반정 이후 추락한 왕권을 숙종이 철권통치로 회복해 놓았으나, 거꾸로 경종은 당쟁에 눌려 지도력을 상실했다.     리더의 가장 큰 죄는 무엇보다도 지도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거듭된 대리청청, 그리고 게장과 생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이 된 1720년, 조정은 장희빈을 죽인 노론이 대세였다. 이들은 경종을 임금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경종을 쫓아내는 데 힘을 쏟았다.      소론이 정국 돌파용으로 궁리해 낸 것이 '장희빈의 신원'이었다. 경종 즉위년에 소론의 조중우가 상소를 올렸다. 장희빈의 한을 풀어주자는 것으로, 그렇게만 되면 장희빈 제거에 앞장섰던 노론이 궁지에 몰리게.. 2025. 3. 1.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현종(재위 1659~1674) 현종은 조선 역대 왕으로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유일하다. 조선 땅이 아닌 청나라에서 출생했고, 왕비를 한 명만 두었으며, 재위 기간을 예론(禮論) 논쟁으로 보낸 점이다. 이 시기 서구에서는 뉴턴의 물리학 등 과학의 기초이론이 일취월장하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 등 열강들이 치열하게 식민지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도 네덜란드 등과 통상하며 선진 문물을 도입하기 바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조선은 최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한 '예론'으로 세월을 보냈다. 1. 기해 예송 논쟁     현종은 아버지 봉림대군(효종)이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던 시절에 태어났다.     현종 즉위와 동시에 1차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효종의 상중이었고 상복 문제가 서인과 남인의 당쟁으로 비화했다.    서인들.. 2025. 2. 28.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인조(재위 1623~1649), 효종(재위 1649~1659) 두 왕의 통치 기간은 인조 26년과 효종 10년을 합쳐 36년이다. 세계사적으로는 대항해 시대로, 산업혁명의 물적 토대가 축적되고 있었다. 소현세자의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조선의 지도층인 사대부와 왕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백성의 반청 정서를 강화하는 북벌만 외쳤다. 실현 불가능한 구호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력 집결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리더는 개인의 입지 확보를 위한 선동성 구호가 아니라 공동 번영에 맞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 비전은 '예측과 측정'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감을 얻고 리더 자신도 당당한 자신감을 갖는다. 1. 서인들 세상이 열리다.      인조는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원군의 장남으로 능양군으로 불렸다. 능양군과 서인은 세 가지..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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