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23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경종(재위 1720~1724) 목차1. 거듭된 대리청정, 그리고 게장과 생감     경종은 몸과 마음이 다 약했다. 강한 숙종은 당쟁을 이용했으나 약한 경종은 재위 4년 내내 당쟁에 이용당했다.    중종반정 이후 추락한 왕권을 숙종이 철권통치로 회복해 놓았으나, 거꾸로 경종은 당쟁에 눌려 지도력을 상실했다.     리더의 가장 큰 죄는 무엇보다도 지도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1. 거듭된 대리청청, 그리고 게장과 생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이 된 1720년, 조정은 장희빈을 죽인 노론이 대세였다. 이들은 경종을 임금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경종을 쫓아내는 데 힘을 쏟았다.      소론이 정국 돌파용으로 궁리해 낸 것이 '장희빈의 신원'이었다. 경종 즉위년에 소론의 조중우가 상소를 올렸다. 장희빈의 한을 풀어주자는 것으로,.. 2025. 3. 1.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쉽: 숙종(재위 1674~1720) 목차1. 카리스마는 나이와 무관하다.2. 환국정치의 달인3. 남인 장희빈 대 서인 송시열4. 각기 왕자를 앞세운 소론과 노론5. 소론과 노론의 입지 확보 다툼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일찍이 군주의 자질을 여우와 사자에 비유했다. 영악하고 잔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적의 덫을 피하고, 간교한 이리를 쫓아낸다. 조직 관리에서 무기력한 선은 악보다 더 나쁘다.    진정한 마키아벨리스트 숙종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음에도 수렴청정을 단호히 거절했다. 현종의 외아들로 태어나 부왕이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보아서인지 조숙했고, 그만큼 명석한 데다 승부사 기질이 넘쳤다. 1. 카리스마는 나이와 무관하다     숙종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데다 현종에게 후궁도.. 2025. 3. 1.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현종(재위 1659~1674) 목차1. 기해 예송 논쟁2. 15년 천재지변과 예송 논쟁     현종은 조선 역대 왕으로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유일하다. 조선 땅이 아닌 청나라에서 출생했고, 왕비를 한 명만 두었으며, 재위 기간을 예론(禮論) 논쟁으로 보낸 점이다. 이 시기 서구에서는 뉴턴의 물리학 등 과학의 기초이론이 일취월장하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 등 열강들이 치열하게 식민지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도 네덜란드 등과 통상하며 선진 문물을 도입하기 바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조선은 최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한 '예론'으로 세월을 보냈다. 1. 기해 예송 논쟁     현종은 아버지 봉림대군(효종)이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던 시절에 태어났다.     현종 즉위와 동시에 1차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효종의 상중.. 2025. 2. 28.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인조(재위 1623~1649), 효종(재위 1649~1659) 목차1. 서인들 세상이 열리다2. 외교 분쟁이 전쟁으로3. 삼전도의 비극4. 효종의 북벌정책      두 왕의 통치 기간은 인조 26년과 효종 10년을 합쳐 36년이다. 세계사적으로는 대항해 시대로, 산업혁명의 물적 토대가 축적되고 있었다. 소현세자의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조선의 지도층인 사대부와 왕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백성의 반청 정서를 강화하는 북벌만 외쳤다. 실현 불가능한 구호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력 집결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리더는 개인의 입지 확보를 위한 선동성 구호가 아니라 공동 번영에 맞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 비전은 '예측과 측정'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감을 얻고 리더 자신도 당당한 자신감을 갖는다. 1. 서인들 세상이 열.. 2025. 2. 28.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광해군(재위 1608~1623) 목차1. 부왕의 질투를 견뎌내고 왕이 되다2. 조선의 이념을 건드리다3. 조선 최초의 공평과세 대동법과 허균의 등용4. 광해와 동인의 동상이몽, 그리고 인조반정      임진왜란으로 파탄 난 조선을 일으켜 세우며,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맞춰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광해군은 가장 극명하게 평가가 갈리는 왕이다. 성리학이 신앙이었던 사대부들이 광해의 최대 치적인 실리외교에 반발하였다.     광해도 이성계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라의 방향을 선회했다. 그런데 이성계는 성공했고 광해군은 좌절해야 했다. 1. 부왕의 질투를 견뎌내고 왕이 되다     방계 혈통이라 늘 부담이 컸던  선조는 후궁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선조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의인왕후에.. 2025. 2. 28.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선조(재위 1567~1608) 목차1. 당쟁의 시초가 된 이조전랑 자리2. 인사권이 야기한 붕당, 동인과 서인3. 망명 정부 구상4. 선위 파동과 전쟁영웅 핍박      선조는 재위 기간이 41년으로 영조, 숙종, 고종 다음으로 길다. 즉위 25년에 7년간 임진왜란을 겪어야 했다.     선조는 영특했지만 전체를 총괄하는 리더십은 부족했다. 한 마디로 의무는 싫어하면서 권리는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선조 치세는 조선의 어느 시기보다 인재가 많았다.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서애 유성룡, 그리고 이순신, 권율, 곽재우, 허균 같은 인재를 모아놓고도 국력 신장을 이루지 못했다. 1. 당쟁의 시초가 된 이조전랑 자리     중종의 아들은 모두 9명으로 대윤과 소윤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창빈 안씨가 낳은 덕흥.. 2025. 2. 2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