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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23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문종(재위 1450~1452), 단종(재위 1452~1455) 목차1. 백면서생 문종의 애잔한 애정사2. 단종의 고명대신과 수앵대군의 기 싸움       왕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여러 가지이다. 자신감, 동기부여 능력, 관계 구축력, 스트레스 회복력, 조직 감각력, 통찰적 지향성, 추진력, 판단력 등이 요구된다.     "그대들이 나보다 더 훌륭한 왕을 만날 수도 있었겠으나, 나는 어떤 왕보다 그대들을 더 사랑하는 왕으로 남고 싶소"    리더는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주어야 하며, 위로받기보다 구성원의 고뇌를 위로해 주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    문종과 단종이 왕으로서 중심만 잡았어도 수양의 찬탈은 없었을 것이고, 연산 같은 폭군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 백면서생 문종의 애잔한 애정사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선대왕이 부족했다면 후대왕이 조금만 잘해.. 2025. 2. 26.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세종(재위 1418~1450) 목차1.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왕도 있다2. 천것도 내 백성이다3. 왕의 낯빛을 살펴 발언하지 말라4. 최초의 국민투표5. 백성과 소통하는 도구를 허하라     세종은 조선뿐 아니라 전 세계의 왕 중 최고의 명품 리더십을 펼쳤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에서 언급한 부족사회의 문화 제작가 브리콜뢰르(bricoleur)라 할 수 있다. 세종대왕, 레오나르도 다비치, 구글의 래리 페이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이 브리콜뢰르의 리더십을 구사했다.        세종은 신하는 물론 백성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했다.       "조선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이것이 세종의 통치철학이었다. 1.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왕도 있다     이도는 스.. 2025. 2. 26.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태종(재위 1401~1418) 목차1. 같이 갈 수 없다면 제거하라2. 대의명분은 오로지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3. 태조에게 옥새를 받아내다4. 선위 파동은 충성도 테스트5. 태평성대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다6. 강자에게 강하게, 약자에게 약하게      목적 달성에 효과적이기만 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태종은 한 마디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았으며 원하는 목적을 확실히 이루었다. 태종 같은 결과 지향적인 리더들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 다음 그 해답으로 '어떻게'를 찾는다. 즉, 과정은 목적을 이룰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목적에 부합하는 기회를 선점하는 데 탁월했으며 무엇보다 핵심을 짚을 줄 알았다.              그 결과 태조 이성계의 날개인 정도전을 꺾을 수 있었.. 2025. 2. 26.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정종(재위 1398~1400) 목차1. 운명에 몸을 맡기다2. 분경금지법  왕관을 쓰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아니면 왕이 되려 하지 말고, 어쩌다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정종은 천성은 착했으나 권력의지와 냉혹한 정치 현실을 간파할 지략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1. 운명에 몸을 맡기다.     정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방과이다. 1398년 8월, 마흔둘의 나이로 왕세자가 되고 같은 해 9월에 왕위에 올랐다. 정종은 치세 2년 만에 자진해서 물러났다. 그 배경에 태조 이성계의 아들 8명이 벌인 권력 투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의왕후 한씨는 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6남과 경신, 경선 2녀를 두고 있었고, 조선 개국 1년 전에 사망하게.. 2025. 2. 26.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 목차1. 변방에서 중앙으로2. 신진세력의 구심점이 되다3. 위화도 회군4. 이성계의 추진력, 정도전의 기획력5. 정도전과 이방원의 충돌  태조 이성계는 변혁의 리더였으며 이에 맞는 창조적 혁신 전략을 구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1. 변방에서 중앙으로     이성계는 변방의 장수였다. 1258년에 동북면을 강탈한 원나라는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였고, 이곳에서 이자춘은 촌장을 지내며 차남 이성계를 낳았다.     홍건적의 두목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원나라를 압박하던 시기에 이자춘은 고려의 공민왕을 찾아가 고려의 옛 땅을 수복하겠다고 하였고, 99년 된 쌍성총관부를 몰아냈으며 당시, 이성계도 이자춘을 도와 공을 세웠고 그때부터 이성계는 친명파가 되었다.    1361년 홍건적 10만 대군이 개경까지 내려와 공민왕..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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