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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23

제주 4.3 사건: 불신과 갈등에서 상생과 발전으로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까지 약 7년에 걸쳐 발생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단순한 지역적 비극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구조적 폭력과 이념 갈등을 함축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본 연구는 4·3 사건이 제주도 공동체에 끼친 장기적인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후 공동체가 불신과 분열을 극복하며 구축해 온 ‘안전’과 ‘회복력’의 구조를 탐구하고자 한다. 목차1. 서론2. 4.3 사건의 사회적 영향3. 회복의 과정: 말하기에서 제도화까지4. 결론: 상생과 발전을 위한 조건 1. 서론    공동체 회복력(resilience)은 재난이나 폭력과 같은 외상적 사건 이후, 공동체가 기능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본 .. 2025. 4. 3.
실학, 조선 지식인들이 꿈꾼 나라: 토지제도 목차1. 유형원: 공전제2. 이익, 박지원: 한전제3. 정약용: 정전법       조선은 처음부터 명확한 원칙에 따라 세워진 나라였다. 건국 세력이 세운 계획에 대하여 후일 종합한 책이 "경국대전"이다. 말 그대로 '나라를 경영하는 큰 원칙'이라는 뜻이다.    유형원이 저술한 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잘 짜인 국가 개혁의 청사진이다. 전체 26권 중 1권, 2권의 제목이 '전제(田制)'이다. 전제를 한글로 바꾸면 토지제도이다. 토지제도는 토지 소유권에 대한 것이고, 전제는 소유권뿐만 아니라 조세제도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1. 유형원: 공전제(共田制)     반계 유형원은 광해군 14년(1622)에 태어난 조선 중기의 실학자이자 작가이다.     고전적 정전제란 정(井)자 모양으로 9등분으로 구획.. 2025. 3. 8.
실학, 조선 지식인들이 꿈꾼 나라: 프롤로그(Prologue) 목차1. 실학이라는 용어의 등장2. 국가 개혁을 위해 탄생한 학문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다. 어느 시대든 부조리가 쌓이면 적폐가 등장하는 법이다. 조선은 고려의 적폐를 청산하고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되었다. 그러나 결국 조선도 적폐의 나라가 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은 나라 곳곳에 쌓인 적폐를 청산하여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 등장했다.     원래 실학은 허학(虛學)에 대비된 진정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실학이 특정 시기의 학문 사조로 지칭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위당 정인보를 중심으로 일어난 조선학운동에서부터다. 다산 정약용의 별세 100주년을 기점으로 정약용의 학문이 실증성과 실용성 그리고 개혁성을 겸비한 근대적 사상이라고 재평가되면서, 현.. 2025. 3. 7.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고종(재위 1863~1907), 순종(재위 1907~1910) 목차1. 대원군, 준비된 리더였으나 과거 지행적이었다2. 대원군과 민비의 대결3. 임오군란과 갑신정변4. 친일에서 친청, 다시 친러로 바꾼 민비의 최후5. 독립협회 창설과 고종의 강제 퇴위6. 3.1운동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은 전대미문의 격변기를 마주해야 했다. 고종은 세계열강이 조선을 선점하려는 등 외부의 드센 도전과 내역 역량의 빈곤이라는 이중 난제를 떠안고 조선의 리더가 되었다. 상황이 태조보다 더 결단력 있고, 광해보다 통찰력 있고, 정조보다 더 치밀한 지략을 요구했고, 리더십도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고종은 간 보는 리더로, 왕의 권리는 누리면서도 과제는 누군가 떠맡기를 원하는 유형이었다.     위기가 깊을수록 리더는 배짱을 가지고 백성과 함께 꿈꾸는.. 2025. 3. 2.
조선왕조실록 500년: 정조(재위 1776~1800) 목차1.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2. 거듭되는 암살 시도3. 왕의 행차 앞에 징과 꽹과리를 들고 선 백성4. 서얼허통책과 시파의 중용5. 인적 자원의 보고, 노비를 해방하라6. 금난전권 철폐7. 천도로 제2의 개국을      "절망으로 단련되었고 희망으로 움직였다"    미완의 혁신 군주 정조의 일생을 압축한 말이다. 경영인이나 정치인이 서로 본받겠다고 하는 인문이 세종이라면, 종조는 인문학자들의 찬사를 받는 왕이다.    정조는 16세기 말 선조 이후 200년 이상 깊어진 붕당정치의 한복판에서 등극했다. 정조와 세종이 둘 다 영민하고 진보적이며 결단력이 강했으면서도, 세종이 소통을 중시한 리더였다면 정조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일을 풀어갔다.   정조는 주자를 신봉하면서도 실학을 수용하고자 했고, 금난전.. 2025. 3. 1.
조선왕조실록 500년 리더십: 영조(재위 1724~1776) 목차1. 의심의 눈초리 속에 등극하다2. 이 나라가 노론과 소론마의 것이더냐3. 탕평책의 만성화에서 싹튼 사도세자의 비극4. 신하는 믿지 않았지만 백성은 사랑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영조는 재위 내내 경종 독살설과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두 가지 소문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것은 전략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영조의 통치는 '혁명은 의지로 하지만 개혁은 정치로 한다'는 경구를 실감케 한다.     영조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전략적 리더의 통치는 무엇일까?    첫째, 자기 절제가 강했다. 철학자 칸트처럼 일상이 규칙적이었으며, 고기와 술을 멀리 했고, 소식했다.    둘째, 전략적 판단을 내릴 때 관련 자료를 살폈다. 영조는 재위 52년 동안 경연을 무려 3,459회 열..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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